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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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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화(달)


 


▶한 어린아이가 밤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아들을 보면서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달을 바라보고 있어요.> 아버지가 다시 물었습니다. <왜 달을 보고 있니?>


그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언젠가는 달나라에 가보고 싶어요.> 아버지가 격려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들아. 너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꿈을 잃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해나가면 너는 능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30년을 달나라에 가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드디어 달을 밟았습니다. 그가 바로 달나라에 간 ‘제임스 어윈’입니다. 그가 달을 밟고 나서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달나라에 도착하자 말자 맨 처음 느낀 것은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였습니다.>


어윈은 30년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30년간 침묵을 지키시는 것 같았지만 기어코 이루어주셨습니다. 승리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때로는 더디고 안 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반드시 할 일을 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세계를 제패하였던 알렉산더 대왕 이야기입니다. 지혜로운 신하에게 대왕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 할 수 있겠는가?> 그 신하는 죽은 해골을 가지고 와서 말했습니다. <이 해골을 책상위에 놓고 정치를 하십시오.>


그 후 알렉산더는 해골을 책상위에 놓고 정치를 하였습니다. ‘나도 이렇게 될 것이니 다 버리고 오직 정치만 잘 하자’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래서 해골이 될 몸이니 전리품은 하나도 갖지 말고 다 싸운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깨끗한 정치를 하였습니다. 모두를 버리고 오직 한 가지에만 전념하였습니다.






▶미국에 한 갑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골동품 수집하는 것을 자신의 삶의 목적처럼 여겼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골동품이 있으면 전 세계 어디라도 쫓아가서는 그것을 사들였습니다. 그는 이미 많은 골동품을 소장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골동품 잡지를 뒤적거리다 정말 마음에 드는 도자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유럽의 어느 왕가에서 사용하던 도자기였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그의 가슴은 마구 뛰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수를 쓰든지 저것을 내 손에 넣어야지."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게 되었습니다. 도자기의 그림이 실린 잡지사에 연락해서 그 도자기가 지금 누구의 손에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잡지사에서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보았습니다. 심지어 그는 도자기의 행방을 추적하기 위해서 유럽까지 건너갔습니다. 그러나 도자기의 행방은 묘연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우연히 미술잡지를 뒤적거리다 자기가 찾고 있는 도자기의 행방을 드디어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그 도자기는 미국의 어느 억만장자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소장자의 이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잡지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얼른 창고에 가서 자기가 소장하고 있는 골동품들을 자세히 조사해 보았습니다. 과연 그곳에는 자기가 애타게 찾던 도자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이미 그 도자기를 소유했지만 그것을 한 번도 눈 여겨 쳐다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엉뚱한데 가서 그것을 찾느라고 괜스레 시간과 물질과 정열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에 로버트 잉거솔(Robert Ingersoll, 1833∼1899)이라는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탁월한 웅변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무신론자였습니다.


한 번은 그가 대중들 앞에서 자기가 신봉하는 무신론에 대해서 강연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강연 도중 갑자기 자기 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었습니다. 그는 그 시계를 대중들에게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제 내가 정식으로 신에게 도전장을 던지겠습니다. 나는 앞으로 5분 동안 신을 모독할 것입니다. 저주스러운 말을 퍼부을 것입니다. 만약 신이 있다면 당연히 나를 벌해서 죽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5분이 지난 뒤에도 건재하다면 그것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서 그는 5분 동안 서슴없이 입에 담을 수 없는 저주스러운 말을 하나님을 향해 퍼부었습니다.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5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건재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띠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보셨지요? 이 한 가지만으로도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데오드로 파커(Theodore Parker, 1810∼1860)라는 목사님이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서는 그의 주장을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아니, 그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자기가 정해 놓은 5분으로 다 소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래 참아오셨습니다. 수천 년 동안 참고 또 참아오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패역한 인류들을 향해서 오래 참아오셨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벧후3:9절에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의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조지 애틀리라는 젊은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중앙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했습니다. 하루는 그가 자기의 숙소를 홀로 떠나서 주변 지역을 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아주 성능이 좋은 자동소총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맹수의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숙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였습니다. 인근의 원주민들이 창과 몽둥이를 들고서 그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옵니다. 마음 같아서는 자기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렇게 해서 원주민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죽거나 다치게 되면 그곳에서의 선교는 영영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결국 그는 끝까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원주민들의 창과 몽둥이에 자신의 몸을 내맡겼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그는 스데반처럼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평온한 미소가 그의 얼굴에 떠올랐습니다.


그가 죽고 난 뒤에 추장은 그의 손에 있는 자동소총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 속에 열 발의 실탄이 들어있었습니다. 그제야 추장은 그의 고귀한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추장은 그의 얼굴에 입 맞추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의 뜻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해서 그곳 원주민들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연주회가 열렸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연주를 하는 사람은 모두 예복을 입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무명의 지휘자였습니다. 새로운 예복을 맞추어 입을 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 낡은 예전의 예복을 입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열과 성을 다해서 지휘했습니다. 한참 팔을 힘차게 흔들다 보니까 낡은 예복이 견디지 못하고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계속해서 팔을 흔드니까 찢어진 예복은 점점 더 찢어져서 한 곡이 끝나고 났을 때는 도무지 그 옷을 입고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예복을 벗고서 셔츠차림으로 무대에 섰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청중들 가운데는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킬킬거리면서 야유 섞인 웃음소리를 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 맨 앞줄에 앉은 귀족 가운데 한 사람이 말없이 자기의 웃옷을 벗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보면서 옆에 있는 사람들도 한 사람씩 두 사람씩 웃옷을 벗기 시작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던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다 같이 자신들의 예복을 벗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웃옷을 벗었습니다. 그리해서 그날 연주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감동적으로 끝날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다른 사람의 실수와 잘못을 보셨습니까? 그것을 지적하면서 비난하려고 들지 마십시다. 사랑으로 그의 민망함을 감싸줄 수 있는 여유가 우리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자존심상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겨야 무슨 일이든지 됩니다.


미국과 영국 사이에 통신 케이블을 연결시킨 사람은 ‘시러스 필드’라는 사람입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에 이미 이런 생각을 하였으니 정말 생각이 큰 사람입니다.


그가 그 계획을 이야기하였을 때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비웃었습니다. ‘네까짓 것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넓은 대서양에 전선을 깔아 미국과 영국 사이에 통신을 원활하게 한다는 것은 인류문명에 지대한 공헌을 하는 것이었지만 그 작업은 순조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3번의 실패 끝에 4번 째 전선을 잇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제1차 실패- 대서양 500km 지점에서 파도로 인하여 케이블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제2차 실패- 실패 1년 후에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더 굵은 줄을 사용하여 성공하였습니다. 양국 사이에 통화가 가능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친 바다에서 견디지 못 하고 또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제3차 실패- 필드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7년 째 되던 해에 다시 한 번 케이블을 깔았습니다. 그러나 또 다시 실패의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실패하는 것은 둘 째 치고 사람들이 비웃었습니다. 그 주제에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방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필드는 기어코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수년 후 이제는 여러 번의 실패를 보완하여 완벽한 케이블을 설치하였습니다. 실로 감격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영국과 미국 사이에 통신에 아무런 이상이 없어졌습니다. 실패 없이 완성은 없습니다. 자존심을 넘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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