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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장래)에 대한 예화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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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장래)에 대한 예화 모음   



성공하는 현대인을 위한 리더십 편지(미래를 준비하는 방법



여론조사원들, 전문가들, 예언자들이 뭐라고 주장하든 간에 어느 누구도 미래에 일어날 일 모두를 정확하게 예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예언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속도와 강도에 있어서 증가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경험에서 나온 추측뿐입니다. 마이클 애니슨(Michael Annison)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환경 속에서 일한다는 것은 ‘회오리바람을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미래가 아주 불확실할 때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


성경에는 미래에 대처하는 3가지의 영원한 원칙들이 나와있습니다.


1. 목표를 세울 때 하나님과 함께 의논하십시오. 

솔직히 말해서 먼저 하나님께 상의하지 않고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아는 유일한 분이시며 당신을 지켜주시고자 하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잠16:1). 다른 말로 하면, 기도 없이 계획을 세우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는 것입니다.


2. 하루하루에 충실하십시오.


내일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는 있어도 내일이 되기 전에는 내일을 살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 때문에 오늘을 즐길 시간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당신이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는 동안에 당신에게 일어나는 일이다"라고 빈정대기도 했습니다. 매 순간순간을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여기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 6:34)


3. 미루지 마십시오 - 지금 당장 하십시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잠 27:1). 미루는 것은 교묘한 덫입니다. 내일로 일을 미루면 오늘을 낭비하게 됩니다. 당신은 그 일을 ‘가까운 어느 날’에 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만 그 약속은 보통 지켜지지 않습니다.


실행 하려고 계획했던 것 중 행하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언제 그 일을 시작하려고 하십니까?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잠 3:27-28). 지금 당장 하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니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렘 29:11,13).


 


미래의 그림은?

어떤 부인이 남편과 아들 삼형제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남편의 직업은 선장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바다에서 폭풍우에 휘말려 배와 함께 최후를 마쳤다는 비보가 날아 들어왔다. 그리고 나서 세월은 흘렀다. 미망인이 그렇게 말렸건만 큰 아들남편의 뒤를 이어 배를 탔다가 목숨을 읽고 말았다. 또한 둘째 

아들도 한사코 말리는 어머니 몰래 선원이 되었다가 그도 역시 얼마 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 막내 아들조차 장래 선원이 되겠다고 하였다. 

어머니와 모든 친척들이 말려도 듣지 않았다. 네 사람이 바다에 미친 까닭을 몰라 

이 부인은 이웃에 사는 목사님께 그 원인을 알아 보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한참 

집안을 살펴보던 목사님은 방에 걸려 있는 그림과 사진을 당장 떼어내고 대신 다른 

것을 걸도록 권하였다. 가슴을 설레이게 만들 정도로 시원한 바다 그림과 선장 

차림의 멋있는 아버지의 사진이 아들들의 마음을 바다로 향하게 했던 것이다.


부인은 바다 그림 대신 산과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린 그림을 걸었다. 얼마 

후 막내 아들은 선원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대신 농부가 되어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자연인과 유전자인간이 미래의 사회 양분한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할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시 39 : 4)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분화한 현재의 사회계급은 미래에는 자연인과 유전자인간(Genrich)으로 나누어진다? 올 초부터 인간 복제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유전공학이 불러올 미래상을 흥미 있게 조망한 책이 나왔다. 

바이덴 펠트와 니콜슨이 저술한 「에덴의 재건설」이란 책은 2,350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유전공학자, 사회학자, 신학자 등이 참여한 '절대 윤리위원회'의 사회문제 해결방안을 다루고 있다. 

이 위원회는 유전공학이 현재와 같은 속도로 발전할 경우 지금의 자연인과 유전자인간은 3,000년대 말경에는 인간과 침팬지의 관계처럼 완전히 다른 종이 될 것으로 예언하며 이미 현재(2,350년) 12세대 째 유전자인간이 나왔다고 진단했다.


 


어린이는 미래의 희망

어느 나라 임금이 푸른 오월을 맞아 군대를 사열하기 위하여 부대로 가는 길이었다. 철길 곁에 큰 호수가 있고 그 옆에 나지막한 야산이 있었다. 산에는 온갖 나무가 싱그럽게 자라고 여러 종류의 새들이 행복하게 노래를 불렀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뻐꾸기의 소리가 아름답고, 가끔 산에서는 나뭇꾼의 노래 소리도 들렸다. 임금님 은 행복한 웃음을 머금고 야산과 호수를 구비돌아 부대에 도착했다. 훈련된 병사들은 완벽하게 사열 준비를 했다. 

그런데 임금은 아무말 없이 좌석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갔다. 신하들은 두리번거리며 임금님을 찾았다. 한참 후에 임금이 돌아왔다. 

임금은 사열을 받지 않고 만족한 표정으로 군인들을 해산하도록 했다. 신하들이 의아해서 물었다. "임금님, 왜 사열을 받지 않고 해산을 시키십니까?" 임금님은 웃으면서 대답한다. "난 이미 사열을 다 끝냈소 

. 내가 원하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군대가 아니라 장차이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어린이 들이요. 나는 사열대신 국민학교에 가서 씩씩하게자라는 소망찬 어린이들을 보고 왔소. 건강한 어린이가 있는 한 이 나라의 장래는극히 소망적이요." 왕은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와 어린이들을 위하여 더 많은 지원을 하도록 정책을 폈다. 어린이가 자라면 어른이 된다. 어린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자.


 


미래를 위해 성경을 읽자


`생활의 지혜' 보다 `하나님의 뜻' 찾자등촌동에 살던 김남주씨(34 회사원)은 얼마전 회사에서 가까운 구로동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 후 그에게는 하나의 고민거리가 생겼다. 그의 고민은 이사 후 서너번 참석해 보았던 집 근처 교회에 등록을 할 것이냐하는 문제였다. 

어릴적부터 보수적인 신앙생활을 해왔던 김씨는 집 근처 그 교회의 예배가 무척 낯설었 다. 특히 담임목사의 설교는 생경하기까지 했다. 

그 목사의 설교는 김씨가 지금가지 들어왔 던 판이하게 달랐다. 

그 목사의 설교에는 김씨의 귀에 익숙해진 `순종' `사랑' `축복' 등과 같은 말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정의' `공동체' `나눔'등과 같은 단어들이 자주 등장했다. 

김씨는 "동일한 책을 저렇게 다른 시각으로 읽을 수도 있구나"하는 놀라움과 함께 "그렇 다면 과연 어느 편이 옳은 것인가"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다. 

김씨는 이사 후 벌써 두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마음의 결정을 못내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성경해석 방식에 끌 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낯설음이 가져다 주는 불안감에 흔들리면서.


현재 한국교회 안에는 크게 보아 두가지의 `성경읽기 방식'이 존재한다. 하나는 보수적인 교인들이 주장하는 `신앙적 입장에서 읽기'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적인 교인들이 주장하는 ` 역사비판학적 입장에서 읽기'이다. 그리고 이 양자는 모두 "내가 옳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서로 완곡한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거의 `진리 사수'의 차원에서 이 루어지고 있다. 

소설가 김성일 장로는 전자의 입장에 서있다. 김장로는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전 4:6)는 성경귀절을 인용하며 "성경을 바르게 읽기 위해서는 성경 안으로 뛰어 들 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성경을 역사적 혹은 사회학적 방식으로 읽는 것은 성경을 ` 말씀'이 아닌 `자료'로서 읽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진보적 신앙인들의 성경읽기가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려는 차원을 넘어, 성경을 바탕으로 세상을 이해하기보다는 

어떤 사상의 확증을 한 자료로 간주하는 식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김장로는 `성경을 바르게 읽는 방법'으로 다음의 몇가지를 제시한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성경의 이야기들을 하나님과 사탄의 세력 간의 갈등구조 하에서 읽을 것 ▲성경의 내 용들을 성경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련 하에서 해석할 것 ▲기본적인 기독교 교리를 담고 있는 평이한 조직신학 서적을 병행해 읽을 것 등이다.


10년 넘게 평신도들을 위한 `헤브론성경공부반'을 이끌고, 여러 언론매체에 성경의 내용을 쉽게 풀이해 소개하는 일을 해오고 있는 김장로는 위와 같은 방법의 성경읽기야말로 성경을 성경답게 읽을 수 있는 기초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수적 신앙인들의 이같은 성경읽기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민중신학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신학을 주창하고 있는 안병무 박사는 그의 저서 `민중신 학 이야기'에서 한국교회 교인들이 "성경을 아무 전제없는 텍스트(text)ㄹ로서가 아니라, 기 독교 교리의 확인을 위한 참고서식으로 읽고 있다"고 비판한다.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읽는 성서' 시리즈를 펴내 청년층으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는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EYC) 성서연구위원 정연복씨 역시 한국교회 교인들의 성경읽기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정위원은 성서가 종교적 명상의 산물이 아닌 역사 속에서 형성된 문서임을 환기시키며서 "한국교회 교인들이 이런 역사적 문서를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으로 읽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한국교회의 성경읽기가 기독교적 정신의 원형을 드러내는 `예수 이야기'보다 교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바울서신'쪽에 편중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우려를 보였다.


정위원은 이상과 같은 비판 위에서 한국교회 교인들에게 ▲성경의 이야기들을 틀에 박힌 신학이나 교리를 전제하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읽을 것 ▲목회자 중심의 일방적 방식을 따 르기 보다는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신자들이 함께 토론하며 읽을 것 ▲출자영감 설에 얽매여 건전한 비판정신과 정상적인 의문들을 억압하지 말 것 등을 주문한다.


성경을 바르게 읽기 위한 방법으로 진보와 보수 양측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은 많은 점에서 서로 대립하고 있다. 서로가 주장하는 성경읽기 방식 자체만을 비교한다면 양측의 주장은 신학적 지식이나 확고한 믿음이 없는 평신도들에게 혼란만 줄뿐이다. 러나 이렇게 상반된 주장을 펴는 양측에 공통되는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그들 모두는 성경을 

`하나님의 구속사'의 측면에서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 

김성일 장로는 "사탄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의 역사"라는 관점을, 그리고 정연복 위원은 "억압받는 민중에 대한 하나님의 해방의 역사"라는 관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주장은 모두 `하나님의 구속사'라는 공통어로 집약될 수 있다. 이들의 주장 중 또 하나 

의 공통점은 성경을 `과거의 책'으로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책'으로서 읽어야 한 다는 점이다. 

김장로는 역시 "성서는 분명 과거의 역사를 바탕으로 한 역사적인 문서이지 만, 그것은 언제나 현재라는 컨텍스트(CONTEXT)와의 관련 하에서 재해석 되어야 한다"며 성서를 읽는 현재적 시각을 강조했다. 또한 이들 모두는 성경을 바르게 읽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는 신앙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성경 바르게 읽기는 생활의 지혜나 테크닉을 습득하려는 태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나와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려는 진지한 태도가 성경을 바르게 읽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진보와 보수 양측 주장의 최대 공통분모이다.


 


고통의 과거는 소망의 미래로

세계의 삼대 참회록에 꼽히는 것은 어거스틴의 참회록, 루소의 참회록, 톨스톨이의 참회록인데, 그것들은 한결같이 지난날의 어리석었던 생활을 돌이켜보면서 아파하고 새 인생으로 거듭난 변화된 생활에 대하여 노래한 작품들입니다. 우리는 가끔 과거에 너무 집착하여 현실에 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과거가 아름답지 못했다고 해서 미래도 아름답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아내와 사별한 신학자 C. S. 루이스에게는 일기를 쓰는 것이 유일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슬픔 속에서 그의 영혼의 상태를 정돈하여 정신병자가 되지 않게 한 것은 기도와 간구였고 그 속에서 집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절망과 비탄 속에 시작한 그의 영의 세계는 폐허와 같은 절망의 심연을 넘어서서 신앙을 재발견하게 했으며 결국 「슬픔을 다하다」 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급강하하던 절망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시간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 요란한 소리는 기도와 간구의 소리입니다. 절망의 바닥에 추락하는 루이스의 처절한 기도와 간구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던 것입니다. 거대한 곰과 사나운 사자가 내 몸과 살을 찢는 것같은 고통이라도 그것을 이겨내면 결국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 당신이 절대 절명의 시간이요, 소망이 없는 절대 절명의 공백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신에게 절대 소망의 문입니다.


 


미래의 그림은

어떤 부인이 남편과 아들 삼형제와 함꼐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남편의 직업은 선장이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남편이 바다에서 폭풍우에 휘말려 배와 함께 최후를 마쳤다는 비보가 날아들어왔다. 그리고  서 세월은 흘렀다. 어머니가 그렇게 말렸건만 큰 아들도 남편의 뒤를 이어 배를 탔다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또한 둘째 아들도 한사코 말리는 어머니 몰래 선원이 되었다가 그도 역시 얼마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남은 막내 아들조차 장래 선원이 되겠다고 하였다.


어머니와 모든 친척들이 말려도 듣지 않았다.네 사람이 바다에 미친 까닭을 몰라 이 부인은 이웃에 사는 목사님꼐 그 원인을 알아보아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한참 동안 집안을 살펴보던 목사님은 방에 걸려있는 그림과 사진을 당장 떼어내고 대신 다른것을 걸도록 권하였다. 가슴을 설레이게 만들 정도로 시원한 바다 그림과 선장 차림의 멋있는 아버지의 사진이 아들들의 마음을 바다로 향하게 했던 것이다. 부인은 바다 그림 대신 산과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을 그린 그림을 걸었다. 얼마 후 막내 아들은 선원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 

고 대신 농부가 되어 어머니를 극진히 모셨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고 듣는 것은 무의식 중에 우리의 마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자기 암시에 빠지고 만다. 텔레비전 지나칠 정도로 보는 어린이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모두 광고 노래인 것들도 바로 이때문이다. 우리 믿는 자들 역시 우리의 눈이 현 세상 

에 집중되어 있다면 우리의 영혼 역시 세상의 욕망과 어지러움에 사로 잡히게 된다. 그러나 미래의 그림을 우리들의 마음속에 걸어놓고 매일 바라보게 된다면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그림은 어디에 있는가? 화랑에서 살 수 있는가? 아니다 미래의 그림은 바로 성경속에 있다.


 


미래지향적인 생각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습니다. 

이 '실상'이란 말은 헬라어로 '휴포스타시스'라고 하는데 이 말에 대하여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헬라의 한 여인이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는데 토지문제가 잘못되어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첫번 재판에 실패를 한 이 여인이 알렉산드리아의 고등법원에 상소하기 위해 

모든 법적 증거서류를 모아서 돌 항아리에 넣고 뚜껑을 닫아 자기 집의 노예를 시켜서 고등법원으로 보냈는데, 

이 노예가 가는 도중 숙박하던 여인숙에 불이 나 모두 불에 타 죽어 버렸습니다.


그 사건이후 2천년이 지난 뒤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이 돌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속에서 그때의 모든 문서와 함께 재판장에게 보내는 한 장의 긴 편지가 있었습니다.


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 

"재판장님으로 하여금 내 고소가 참된 것임을 알게 하고자 여기에 내 휴포스타시스를 보내드립니다."라고 씌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휴포타시스란 바로 증거물에 대한 확실한 신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증거를 가지고 그의 약속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언제나 약속이 있으면 반드시 실현이 있고, 영원한 미래가 있는가 하면 현재적 성취도 항상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신앙입니다.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을 때는 반드시 우리에게 하나님만을 깊이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염려하는 우리의 실존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교회가 바로서야 미래가 있다


한국 교회가 힘을 잃고 있다. 진리의 중심에 서서 시대와 민족을 향해 바른 길을 제시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능력을 상실한 채 국민과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선교 100년이 갓 넘은 교회의 자리는 비어가고 이 땅의 희망이 돼야 할 젊은이들은 쾌락주의와 향락주의, 세속주의로 꿈을 잃어가고 있다. 성경을 들고 교도소를 찾는 전·현직 대통령의 아들들은 국민의 가슴에 절망감을 더해주고 있고 가정과 학교의 권위마저 도전을 받고 있다. 

생명의 존엄성을 짓밟는 인간 복제와 유전자 조작은 또 다른 바벨탑을 쌓고 있고 최첨단의 정보화 시대에도 사주와 궁합을 보기 위해 역술인을 찾는 국민의 발길이 늘고 있다. 붉은악마의 물결과 단군상이 국민의 정신을 좀먹고 있고 사회의 보루가 돼야 할 교회마저 리더십을 잃은채 무력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 교회는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21세기의 첫 장을 연 지금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 꿈을 주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하는가.교회는 진정 해답을 갖고 있는가. 

교계 지도자들은 “한국 사회가 모두가 더불어 사는 건강한 사회, 꿈을 주는 사회가 되지 못하고 불신과 갈등, 반목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책임이 크며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한 대안 역시 교회에 있다”고 말한다.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한국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교회가 본질적 사명과 가치를 회복할 때 교회의 어려움이 극복될 수 있으며 시대적 사명 또한 감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장광영 감독회장(금호제일교회)은 “우리 사회가 세속주의 쾌락주의에 물들어 가고 있고 교회 역시 변화의 능력을 상실한채 사회적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바로서서 시대와 민족을 위해 바른 길을 제시해야 하며 그럴때 비로소 미래가 있다”고 강조한다. 우리 사회에 급속히 번져가는 교회에 대한 냉소주의와 반기독교적 행태를 극복하고 이 나라와 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시대적 비전을 제시할 궁극적인 해답 역시 교회에 있다는 지적이다. 

한신대학교 연규홍 교수(교회사)는 “21세기 한국교회의 바른 위상 정립을 위해서는 신학교육과 예배 의식의 개혁을 통한 성서적 교회의 본질 회복, 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교회간 협력, 사회 봉사와 윤리성 회복 등 세상을 위한 교회상 정립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한국교회는 선교 117년의 역사속에 뜨거운 성령체험과 열정적인 전도를 통해 교회와 성도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해온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신앙과 기독교 문화의 부재로 변화의 중추 세력으로 자리잡지 못한 채 교회안의 종교로만 남아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따라서 먼저 깊이있는 자성과 성찰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이 시대와 민족을 향해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21세기 한국 교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는 교계내의 목소리가 높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나눔과 섬김의 삶을 통해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관계,우리 사회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또 교회가 우상숭배와 미신,부정부패 등에 대해 확실한 해답을 제시하면서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한국 교회에 대한 일부 왜곡되고 편향된 비판에 대해서도 겸손하고 성숙한 자세로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21세기 한국교회의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교회는 넓게 봐야 한다. 세상을 주님의 통치 영역이라는 넓은 시각에서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며 사회를 끌어안고 변화시켜나가는 우리 사회의 양심과 도덕의 표준이 돼야 한다.교회는 우리 사회의 마지막 보루다.교회가 바로서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도, 사회의 미래도 없다. 교회가 진리의 중심에 서서 이 시대와 민족을 향해 바른 길을 제시할 때 이 나라에 소망이 있다.


 


미래를 바라 보면서

당나라 때에 장안이라는 곳에 `송청'이라는 소문난 약장수가 있었습니다. 약을 잘 지어서 소문이 나 있을 뿐만 아니라 약 값이 없는 어려운 사람일지라도 차용증만 받고서 약을 지어주기에 인심 좋은 분으로 더욱 더 소문이 나 있었던 것입니다. 먼 곳에서 온 면식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독촉하는 법이 없고 연말이면 차용증을 불태워 두번 다시 입에 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안 사람들은 송청이를 향하여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기도 하고 대단한 자선사업가라고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송청이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면서 나는 어리석은 인물도 아니고, 큰 인물도 아니고 다만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행하는 작은 행동일 따름이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약값을 떼어 먹은 사람들 가운데는 살림형편이 펴져서 부자가 된 사람도 있었기에 찾아와서 그때 약값의 몇배를 갚아주기도 하고, 고관대작으로 출세를 한 후 찾아와 분에 넘치는 대접을 해주는 자도 있었답니다.


사랑의 씨앗을 심었을 때 보상과 칭찬과 행복의 열매가 미래에 맺혀질 것이고, 수모를 참는 인내의 씨앗을 심었을 때 역전승의 열매가 반드시 미래에 맺혀 지고야 말 것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오늘이라는 현실을 잘 가꾸어 갑시다.


 


미래를 보라

가난한 광원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거리에서 구걸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년은 「가난 너머에 찬란한 미래」가 있다는 것을 믿고 언제나 노래를 불렀다. 이 모습을 인상깊게 본 한 중년 남자가 소년을 불러 대화하다가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기거하며 공부하도록 해라.나도 얼마 전 아들을 잃어 외롭단다』라고 말했다. 

소년은 이후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며 성장, 세계사에 남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이 소년이 바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다.


 


건전한 교회 비판은 미래 성장의 밑거름”

“목사가 교회를 팔 때 교인 1인당 공정가격은 100만원이고 부자동네는 프리미엄까지 붙는다” “다른 교회의 교인을 훔쳐오고 꾀어오고 헌금을 많이 낼수록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고 속이는 교회는 타락한 중세교회와 다를 바 없다”


지난해 출간된 ‘교회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라는 책에 나오는 대목입니다.기독인이면서 언론인으로 재직한 한용상 장로가 쓴 이 책은 한국 교회와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한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었지요.


이 책 외에도 ‘예수는 없다’‘기독교 죄악사’ 등 지난해에는 유독 기독교 비판서적이 많이 출간됐습니다.이 책들은 기독교 계뿐만 아니라 일반 출판계까지 관심을 보였고 실제로 많이 팔렸죠.일선 목회자나 보수신학자를 비롯한 기독교계에서는 이 서적들을 다시 비판하는데 열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책들은 한국교회의 일그러진 현상을 비판하거나 서구 중심의 배타적인 기독교 교리를 지적했고 반론을 제기하는 측에선 “케케묵은 19세기의 신학으로 현대교회를 재단하고 있다”거나 “교회 밖에서 교회를 비난하는 것은 교회를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반박,교계를 들끓게 했습니다.신문사에 항의 전화가 오기도 했고 출판사에도 많은 의견이 답지했다고 합 니다.


그 뒤 세상을 시끄럽게 한 각종 게이트 때문인지 그 열기가 어느 정도 가셨습니다.이제는 이 책들의 공과를 차분하게 돌 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자는 솔직히 이 책들을 읽고 실망했습니다.‘교회가 죽어야…’를 쓴 한상용 장로나 ‘예수는 없다’를 쓴 오강남 교수도 

이 책에 나온 기독교 비판이 ‘낡은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죠.한장로는 책 서문에서 “이미 16년전에 서울예수란 제목의 기 

독교 사회평론서를 통해 한국교회의 현실을 비판한 적이 있지만 교회의 현실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졌 

다”고 밝히고 있습니다.책의 내용도 16년전과 크게 다를 것 없고 형식이나 문체도 80년대 많이 나돌았던 사회고발 서적 

과 흡사합니다.


오교수의 책도 이미 교계에서 지적한 대로 한 세기전 인문주의 신학의 문제의식을 기초로 기독교리를 비판하고 있어 최 

근의 교회 현실과 비교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어 뭔가 새로운 비전을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망과 함께 절망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책들이 여전히 베스트 셀러가 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는 점 

이죠.많은 사람들이 이 책들이 지적한 교회의 잘못에 공감하고 있고 여전히 이런 지적에 목 말라 하고 있다는 것이니 그 

동안 교회가 변한 것이 없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한장로가 ‘서울예수’란 책을 쓴 뒤 16년동안 세상은 크게 변했는데 교 

회는 변화를 주도하기는커녕 따라가지도 못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오교수는 책을 펴낸 뒤 독자들로부터 ‘이 책을 읽고 나서 오히려 기독교에 다시 관심을 갖게됐다’‘성경을 다시 펴들었다’ 

는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새해에는 교계가 교회를 향한 비판에 좀더 성숙한 반응을 보일 수 있길 바랍니다.그래서 이런 책들이 정말 ‘옛날 얘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미래지향적인 교회


본문: 벧후 1장 1~11절


우리는 세상 끝에 와 있습니다. 베드로가 베드로후서를 쓸 때 그의 생애 마지막 사역 즈음에 기록했습니다. 그는 이 편지를 쓸 당시 교회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바울도 이미 디모데후서에서 교회의 위기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교회의 교리를 달리 말하고 성경을 잘못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왜곡시켜서 다른 의미를 덧붙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현상들에 대해 베드로후서 3장 16절에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멸망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친구들에게 경고합니다.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 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베드로후서 1장 1절의 마지막 말씀을 보겠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베드로는 자신과 같이 믿음이 강하고 보배로운 사람들에게 이 편지를 썼습니다. 베드로후서는 보통 사람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베드로나 바울이 굉장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믿음도 특별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우리의 믿음도 자신들의 것처럼 굉장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도들이 가지고 있는 귀중한 믿음을 우리가 가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은 귀한 말씀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제공해주셨다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하나님은 당신의 신기한 능력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능력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는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능력을 주신 데에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같이 경건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 때 새 생명을 갖게 됩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그분을 앎으로써 이런 일이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분을 안다는 것은 그분을 경험한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영생을 허락해주셨습니다. 그 전에 죄의 삯인 사망의 길을 가고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갖기 위해 모든 능력을 받았습니다. 또한 올바르게 살기 위한 경건의 선물도 받았습니다. 경건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닮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내가 온전한 것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런 약속은 보배롭고 지극히 크고 귀한 것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이 약속이 우리에게 주어진 데에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분이 오실 때 하나님과 같이 변하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약속입니다. 

둘째는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악한 것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할 것 같이 보이지 않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도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9?11사태 때 쌍둥이 빌딩은 무너졌습니다. 세상의 평화를 원하지만 점점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부가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항상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이고 정치도 그렇습니다. 더구나 이 땅은 남북이 나뉘어 있지 않습니까? 

교회 안에서도 뭔가 잘못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교인들끼리 질투합니다. 그러면 일이 잘못됩니다. 세상이 썩어지는 것은 인간에게 나쁜 정욕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삶에서 정욕으로 인해 잘못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부패된 것이 많습니다.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가 우리 중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패된 것, 더러운 것에서 도망갈 수 있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굉장한 약속입니다. 죄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베드로후서에서 말하는 위기는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하는 사람들에서 비롯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랫동안 기다려도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니 재림이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과 똑같은 자로 만들어 주실 것이며,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정욕을 다 씻어줄 것을 약속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다 주셨습니다. 생명을 주셨고, 경건을 주셨습니다. 악에서 구원하시고 그분과 똑같이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주셨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5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8절 말씀입니다.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1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더욱 이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에 무엇을 더한다는 것은 우리가 힘써 행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삶이 훌륭하지 않았더라도 믿음 위에 덕을 쌓아보십시오. 그 덕에 하나님의 지식을 쌓으십시오. 지식은 말씀을 익히고 예배 드리고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쌓을 수 있습니다. 만약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지식은 쌓이지 않을 것입니다. 

덕을 쌓은 다음, 지식에 절제를 붙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성품을 절제하기 어렵습니다. 혀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나쁘게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스스로 멈추도록 노력하라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노력하면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필요가 무엇인지 생각하여 사랑으로 전해보십시오. 이런 방법을 통해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다면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노력할 때 이루어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룰 수 없습니다. 

저는 은퇴하여 작은 집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집에 정원이 있습니다. 저는 정원에서 일을 할 때 행복합니다. 정원의 흙은 진흙처럼 아주 딱딱합니다. 거기에 비가 오면 단단해져 일하기가 더 힘이 듭니다. 저는 무엇이든 해야 했습니다. 땅을 파서 자갈을 묻은 뒤 토양이 부서져서 땅이 숨을 쉬고 수분이 흡수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비료를 뿌렸습니다. 토양이 비옥해졌을 때 꽃을 심으니 아주 예쁜 꽃이 피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을 때 처음 토지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노력을 하면 마음의 토지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노력하면 효과적이고 열매를 맺는 크리스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을 때 9절 말씀을 주십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여기에 두 가지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아십니까? 효과적이고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소경이 되고, 망각한 자가 되는 겁니다. 앞으로 가든지 뒤로 가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필요한 모든 것을 이미 하나님께 받았으니 그 위에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꼭 붙잡으라고 말합니다. 배운 것을 자주 상기시켜야 합니다.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 

진리를 알았습니다. 좋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 위에 온전히 서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강한 군사입니다. 우리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우리가 이런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고 강조합니다. 13절에서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라”고 합니다. 15절에도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고 합니다. 

16절에서 18절까지 베드로가 우리에게 말씀을 상기시키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은 그냥 적은 것이 아니라 일어난 것을 눈으로 본 사람들의 간증입니다. 이 말씀은 만든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분의 능력과 재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를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그리스도의 옷이 빛나는 것과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또 귀로도 들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보다 더 나은 복음이 있습니까? 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이 세상은 어두운 곳입니다. 우리에게 빛이 필요합니다. 말씀 안에 등불이 있습니다. 새벽별이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등불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십니다. 이제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게 될 새벽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20, 21절 말씀입니다.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베드로후서는 베드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예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를 쓰는 동안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하나님이 말씀을 적게 하셨습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온누리교회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 보아왔습니다. 우리는 이로 인해 기뻐합니다. 그러나 이 교회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하 목사님이 떠나고, 초창기 멤버가 떠나고, 그때에도 온누리교회가 샛별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여러분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성도들에 의해 이 교회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온누리교회뿐 아니라 한국 교회와 세계의 교회에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보배롭고 귀중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능력 주실 것을 믿습니다.


* 기도: 주님! 

베드로의 생애와 그의 모든 증거를 감사합니다. 

그가 본 것과 들은 것을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큰 약속을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제공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반응하고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미래를 바라 보면서


당나라 때에 장안이라는 곳에 `송청'이라는 소문난 약장수가 있었습니다. 약을 잘 지어서 소문이 나 있을 뿐만 아니라 약 값이 없는 어려운 사람일지라도 차용증만 받고서 약을 지어주기에 인심 좋은 분으로 더욱 더 소문이 나 있었던 것입니다. 먼 곳에서 온 면식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독촉하는 법이 없고 연말이면 차용증을 불태워 두번 다시 입에 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장안 사람들은 송청이를 향하여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기도 하고 대단한 자선사업가라고 칭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송청이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면서 나는 어리석은 인물도 아니고, 큰 인물도 아니고 다만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행하는 작은 행동일 따름이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약값을 떼어 먹은 사람들 가운데는 살림형편이 펴져서 부자가 된 사람도 있었기에 찾아와서 그때 약값의 몇배를 갚아주기도 하고, 고관대작으로 출세를 한 후 찾아와 분에 넘치는 대접을 해주는 자도 있었답니다.


사랑의 씨앗을 심었을 때 보상과 칭찬과 행복의 열매가 미래에 맺혀질 것이고, 수모를 참는 인내의 씨앗을 심었을 때 역전승의 열매가 반드시 미래에 맺혀 지고야 말 것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오늘이라는 현실을 잘 가꾸어 갑시다.



 


미래의 설계도

내 조카 현희에게 커서 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현희는 "나중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라고 대답을 했다. "그러면 선생님이 되기 위해서 현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한참동안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그야 공 부를 열심히 해야되고요. 부모님 말씀도 잘 들어야 하고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께 도와 달라고 부탁 기도를 해야 해요" 라고 대답하는 조카 앞에 나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마음속의 다짐이기도 했고 앞으로 그렇게 살겠다는 미래의 설계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그러한 미래의 설계도도 그려놓고 있지 않은 상태에다가 갈팡질팡하는 내 모양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어린 조카조차 신념에 찬 목소리로 자신의 앞날의 설계를 미리 해놓은 상태인데 지금의 나의 상태는 어떠한가? 우리는 한번쯤 생각에 잠겨 나 자신의 미래의 설계도를 그려보자! 정말 주님께서 원하시는 설계일까?


내 조카의 말처럼 무엇보다도 내 생각만으로 할 것이 아니라 도와 달라는 기도를 해야 할 것이다.



 미래를 보라


 가난한 광원의 아들로 태어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배고품을 견디다 못해 거리에서 구걸하기도 했다.

 그러나 소년은 '가난 너머에 찬란한 미래'가 있다는 것을 믿고 언제나 노래를 불렀다.

 이 모습을 인상깊게 본 한 중년 남자가 소년을 불러 대화하다가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기거하며 공부하도록 해라. 나도 얼마 전 아들을 잃어 외롭단다"라고 말했다.

 소년은 이후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며 성장, 세계사에 남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다. 이 소년비 바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다.



 미래를 보면 젊어진다


 아놀드 토인비(1889-1975)는 문명의 발상과 발달을 결정하는 법칙을 연구한 역사철학자였다. 그는 특히 합리주의를 배제하고 신비주의와 종교적 이상주의 관점으로 역사를 조명했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언제나 강조했다. 81세 생일을 맞아 그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사람이 늙으면서 과거에 붙들려 있으면 불행하다. 또 미래에 대해 눈을 뜨지 않으려는 약한 마음도 생긴다.과거의 사람은 몸이 죽기 전 이미 죽은 사람이다. 희망을 갖고 미래를 보는 용기가 사람을 젊게 만든다."



 미래를 사는 사람들

 히 11:32-40; 12:2; 빌 3:13, 14; 눅 9:62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큰 예배당에서는 예배를 드린 후에 많은 사람들이 남아서 지나간 과거를 돌아다보며 그 옛날 좋았던 시절 이야기를 자주 하곤 하였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나누던 얘기가 사람이 더 많아질수록 "그 때가 좋은 시절이었지."가 연발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예배 후 얘기의 꽃을 피우고 잇을 때, 젊은 남녀가 결혼식 준비를 위하여 그 교회를 찾아왔다. 젊은 남성 두 사람이 그 자리에 함께 하였을 때 두 사람의 계획과 생각은 모두 앞날에 관한 것이었다. 결혼식의 계획서부터 부부의 먼 미래 계획까지 희망과 사랑을 가진 그런 것이었다. 그들의 얼굴은 다른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 때가 좋았어."라는 실의 자조적인 웃음이 아니었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래의 열쇠

 

 서울올림픽 입장식에서 가장 돋보였던 아이디어는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가는 한 어린이였다. 세계 언론은 이 아름다운 시적 장면을 서울 올림픽을 상징하는 장면으로 삼았다. 이 아이가 등장했을 때는 모든 음악을 멈추고 사람들은 숨죽였다. 아이의 순진무구함이 주는 평화로움에 전인류는 감동했다.

 어린이는 바로 우리의 내일이다. 어린이를 바르게 키우는 것이 곧 내일의 세계를 바르게 열어가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바르게 키우도록 신으로부터 위탁받은 청지기들이다.

 

미래의 적

 1868년에서 1894년까지 영국의 수상을 지낸 W.E.글래드스톤이 어느날 한 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당시 영국은 경제악화 사회혼란 등으로 미래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글래드스톤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며 희망을 역설했다. 강연 후 한 학생이 「그러면 원로께서는 미래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씀입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글래드스톤은 천천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다만 한가지 걱정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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