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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내가 받을 칭찬과 책망 (계2:18-29)

본문

올해 내가 받을 칭찬과 책망


요한계시록 2 : 18 - 29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은혜를 사모하여 이 시간도 하나님의 성전에 찾아 나오신 성도 여러분에게 말씀을 통하여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고,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불의 혀가 갈라짐 같이,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 저녁에도 여러분들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고 반드시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내게 오는 자를 결코 내어 쫓지 않으신다”(요6:37)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시107:9절에는 “사모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채워 주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시간 다 은혜 충만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두아디라 교회는 사도행전 16;11절 이하에 보면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지방에 가서 전도할 때 자주 장사를 하던 루디아라는 여자를 만나서 그가 예수를 믿고 그의 가정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곳에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는데 그 루디아의 고향이 바로 두아디라 성입니다. 

        루디아는 바울에게서 은혜를 받고 그 후에 고향에 돌아가서 복음을 증거하여 꿈에도 소원이든 고향에 교회를 세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한 여자가 은혜 받고 기쁨이 충만할 때 그 기쁨은 가족에게 전달이 되고 또 이웃으로 퍼져 나가고 그 도시가 복음화 되고 더 나가서는 고향까지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두아디라 성은 정치적인 도시도 아니고 종교적인 도시도 아닙니다. 상업과 공업이 발달된 도시로서 대부분 생활이 넉넉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이 도시는 우상 숭배가 아주 극심했습니다. 우상의 신전에서 전 주민들이 모여서 공동으로 식사를 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때의 음식은 모두가 우상의 신전에 바쳐졌던 제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모임에 참석을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참석을 하자니 신앙생활에 가책을 느끼고 그렇다고 참석을 하지 말자니 사업상 또는 처세상 지장이 많고 하니까 대부분 교인들은 모두 이러한 모임에 참석을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는 당연히 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비단 그때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대두되는 문제입니다. 주일날 동네에 결혼식이 있는데 가자니 주일을 범하게 되고, 안 가자니 인심을 잃을 것 같고, 내가 안가면 우리 집 잔치 때 그 집도 안 와 줄 것 같고 하니까 갈등을 느끼다가 그만 ‘주일은 다음 주에도 있으니까 다음 주일에 가지’ 하고 주일을 범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사도 바울은 말씀하시기를 

         (갈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살전2:4)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고 말씀하셨고 또,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예>고려 말기의 문신이요 학자인 포은(圃隱) 정몽주의 어머니는 아들을 양육시킬 때 지은 유명한 시조가 있습니다.

        까마귀 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우나니 

        창파에 고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정몽주는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에 의하여 선죽교에서 쇠도리깨에 맞아 죽었으나 그의 충절은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몽주가 이와 같은 충절을 지킬 수 있었고 나라에 충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정몽주의 어머니의 시조를 이렇게 고쳐보았습니다. 

        사탄 마귀 우는 곳에 성도야 가지 마라

        성난 마귀 널 삼키려고 올무 놓아 유혹하니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은 몸 시험 들까 하노라 <아 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정신 차려야 합니다. 단 한 번의 실수가 평생의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사탄 마귀들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까지 미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마24:24)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두아디라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무슨 칭찬을 받고 책망은 무엇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면서 오늘의 우리들이 받을 칭찬과 책망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교회가 받을 칭찬과 책망은 무엇인가? 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1. 먼저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계2: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 주님의 눈은 불꽃같은 눈입니다.




        이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불꽃같은 눈과 눈부신 발을 가지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의 눈은 비둘기같이 아름다운 눈으로 어린이들을 사랑하셨고,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눈물을 흘리시던 사랑의 눈입니다. 그런데 두아디라 교회에는 불꽃같은 눈으로 나타나신 것은 사람들의 심령 깊은 곳까지 통찰하심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 주님의 불꽃같은 눈앞에는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히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2) 주님의 발은 빛난 주석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죄악과 불의와 더러운 것을 밟아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온 세상을 정복하실 것을 나타내어 주시는 말씀입니다. 바로 두아디라 교회에 그 도시에서 성행되고 있는 이세벨의 음행과 우상들을 모두 밟아 정복하고 제거하실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들도 주님의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의 심은 골수까지 감찰하실 때 주님 앞에 드러날 죄악이 없는지 다시 한 번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책망 받을 일이 있으면 주님의 권능의 발, 능력의 발로 밟아버려야 합니다.





2. 두아디라 교회를 칭찬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계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1)사업을 칭찬하셨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사업을 합니다. 농사도 사업이고 축산도 사업입니다. 장사도 사업입니다. 공부도 사업입니다. 

        그런데 그 사업의 목적이 누구를 위한 사업이냐가 문제입니다. 그 사업을 통해서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목적이라야 하는데 돈 벌기 위해서, 또 돈 벌어 나 잘 살고 호의호식이나 하고, 연락이나 하고자 하는 사업이 되어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하나님의 사업을 열심히 하였기에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사업을 하십니까?


 


(2)두아디라 교회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을 받았는데 이 두아디라 교회는 사랑이 있음을 칭찬하였습니다. 사랑은 성도의 믿음의 열매입니다. 또 사랑은 수고가 동반되는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성도의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3)두아디라 교회는 믿음도 있었습니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 했는데 두아디라 교회는 믿음이 있어서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은 성도의 자본입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돈이 있어야 하듯이 성도는 믿음의 자본만 있으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며 그 믿음대로 이루어진다고 주님은 약속해 주셨습니다.




(4) 두아디라 교회는 섬김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구제 사업이 섬기는 것입니다. 

        (마25:34-36)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25: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그리고 섬김이란 가난한 사람이나 불쌍한 사람을 돌보는 것만이 섬김이 아닙니다. 윗사람을 인격적으로 받들어 섬기고, 또 성도들 간에도 서로를 인격적으로 존경하며 섬기며, 주의 종들에게 순종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5) 두아디라 교회는 인내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생활을 해 나가는데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인내’ 입니다.  우리들의 육체가 건강하게 유지가 되려면 수많은 영양소가 필요하듯이 인내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꼭 필요한 영양소입니다. 

        (롬5: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히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6) 두아디라 교회는 나중 행위가 처음보다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은 잘 하다가 나중은 시시하게 끝나기가 보통입니다. 그래서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반대로 두아디라 교회는 점점 신앙이 성장되고, 믿음도 성장되고, 열심도 늘고, 그래서 교회는 부흥이 되었습니다. 

       신앙은 반드시 성장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도 반드시 성장이 되어야 합니다.  성장하지 못하는 믿음과 신앙은 병든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과 믿음은 날마다 진보되어야 합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좋아야 하고, 금년보다 내년은 더욱 좋아져야 합니다. 

        요2:10절에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 마을의 혼인 잔치에 가셔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을 때처럼 처음보다 나중이 좋아지는 것이 우리들의 믿음이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3. 두아디라 교회가 받은 책망은 무엇입니까?




(1) 이세벨을 용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구제 사업도 많이 하고, 병자들을 돌보는 일도 많이 하고, 믿음도, 사랑도, 인내도, 많아서 칭찬을 받았는데 이 교회에는 세속주의가 침투하였고 악한 인물을 용납하여 교회의 순수성과 순결성을 잃어버려 마치 정절을 상실한 여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계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원래 이세벨은 왕상 17장~18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나라의 아합왕의 왕비인데 오늘 본문의 이세벨은 초대교회의 이단자를 말합니다. 또한 이세벨은 성도들을 행음하게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정절을 지키지 못할 때 행음 이라고 단정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마땅히 신앙의 정절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의 우상과, 물질의 우상, 사상의 우상, 친척과 가족의 우상,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영적 간음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2)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 회개치 않았다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회개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가롯유다는 예수님의 같은 제자로서 죄를 지었어도 베드로는 회개를 하였고 가롯유다는 회개치 못하였습니다. 회개치 않는 사람들을 주님은 경고하십니다. 

        22-23절 말씀에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여기서 침상에 던진다는 말씀은 중병에 걸리게 하여 다시는 회생치 못하고 죽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뜻과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기회가 올 때에 철저하게 회개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책망을 받지 말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4. 주님께서는 두아디라 교회에게 상급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1)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이 세상에 강림하실 때에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은 천년 동안 왕 노릇 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시2:8-9)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주의 종들이, 성도들이, 이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2) 새벽별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계22:16) 주님께서는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새벽별은 주님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또 새벽별이 뜨면 날이 밝아옵니다. 그러므로 새벽별은 길고 지루한 밤이 지나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요즘 새벽에 나오면 이 새벽별이 동녘 하늘에 빛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밤중과 같이 어둡고 괴로운 시간들이 지나가고 광명한 축복과 기쁨과 소망이 넘치는 아침이 다가온다는 말씀입니다. 

        또 새벽별은 사탄의 어둠 권세가 무너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영광의 날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벽별을 주리라는 것은 눈물과, 한숨과, 고통과, 괴롬과, 핍박과, 질병과, 어둠과, 시험과, 환난이 물러가고, 기쁨과, 소망과, 사랑과, 평강의 주님께서 내게 찾아오셔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는 곳으로 인도하여 주신다는 말씀 인줄로 믿습니다. <아 멘>




(3)그러나 이와 같은 약속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있습니다.




        (계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라는 단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겨야 합니다.  사탄도 이기고, 죄악도 이기고, 할 수만 있으면 택함 받는 성도들까지도 미혹하는 온갖 유혹도 이기고, 적당주의도 이기고, 합리주의도 이기고, 나태와 게으름도 이기고, 우리들을 괴롭히는 가지가지 질병도 예수 이름으로 이기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그리고 끝까지 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되어서 우리 주님이 주시는 만국을 다스리는 철창 권세와 새벽별을 얻고 영생 복락 얻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17년 한해가 이제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지나간 1년을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1년 동안 구비 구비 어렵고 힘든 고비를 많이도 지나왔습니다. 천길 만길 낭떠러지와 같은 위태한 길도 걸어왔습니다. 때로는 어찌 할 수가 없어서 주저앉아서 탄식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낙심과 좌절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고 방황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하시고 능력의 오른 손으로 붙들어 주시고 동행하여 주셨기 때문에 오늘까지 은혜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을 위하여 무엇을 하였습니까. 무엇을 드렸습니까? 과연 주님이 오늘 우리들에게 무어라고 칭찬을 하실 것이며, 책망은 무엇을 하실 것인가?  조용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금년 나머지 기간 동안이라도 정말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위하여 충성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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